
먹을게 없을까 하고 들어간 호주의 대형마트중 하나인 울워쓰(Woolworth)
뭘 사야할지 몰라서 달랑 생수 한통 사서 나왔다.
호주의 건널목은 재미난다. 우리나라처럼 시간되면 신호가 바뀌어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아닌, 손바닥만한 버튼을 누르고 기다려야 신호가 바뀐다. 게다가 버튼을 누르면 띡, 띡 하며 소리가 나더니 녹색불이 켜지고서는 싸구려 장난감 전자총마냥 '두두두두두두' 하고 소리가 난다. 그 신호 주기도 일정치가 않고, 대략 주변의 교통신호가 행인들이 건너기 적절해질 무렵이면 바뀌는 듯하다. 그나마 평소엔 차들이 많지 않으니 현지인들은 대놓고 무단횡단 하기 일쑤이다. 그래도 우리나라처럼 차들이 빵빵거리지 않고 슬그머니 정차해준다. 너무도 태연히, 너무도 당연한 듯이 무단횡단을 하는 그네들 사이에서 혼자 덩그러니 신호를 기다리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조금은 뻘주름하기까지 하다.

서퍼스파라다이스 부근 도로. 저 가로등 기둥에 버튼이 달려있다.
자, 무엇을 먹을까 하고 푸드코트를 둘러보길 15분. 도무지 먹을만한게 떠오르질 않는다. 호주는 특별히 전통음식이 없는데다, 다민족 국가인 관계로 우리나라 포드코트에서 파는 그것들과 별 차이가 없다. 햄,에그,브레드로 구성된 식사 세트는 가격에 비해 양이 차지 않을 듯 하여, 결국 발걸음을 옮긴 곳은 '헝그리잭'. 우리나라에서 버커킹이 이곳에선 헝그리잭이다. 배고픈 잭. 하핫. 거 참 이름 재미난다. 와퍼세트를 하나 시켜들고 야외 식탁에 앉아 한입 베어문다. 프렌차이즈 체인점이 그러하듯, 맛은 어느나라나 거의 비슷한 것 같다. 감자 칩의 굵기가 두배는 더 굵었는데, 생각보다 짜고 기름기가 많아서 쉽게 먹지는 못하겠다. 이런 감자칩에 생선튀김 하나 얹어서 먹는게 호주인들의 주식인 Fish&Chips 라고 하니 그렇게 비만인들이 많은 듯 하다. 특히나 이곳 여성들은 심각하다.
대부분 이목구비는 서양인 특성대로 뚜렷하여 둘중 하나는 예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허나 몸매를 보자면 그때부터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양인의 체구가 하체가 좀 튼실한 면이 없지 않지만, 이것은 조금 심각할 정도이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어깨너비만 하고, 뱃살이 좀 접히는 정도의 체형은 평균 수준이다. 우리가 영화에서만 보던 초고도 비만 체구들이 여기엔 너무도 흔하다. 살보다 지방이 몸의 두배는 될만한 덩치들이 주변에 깔려있다고 해야 표현이 적당해 보일 듯 하다. 이렇게 보니 정말 우리나라 여성들의 몸매는 퍼펙트라고 봐도 될 만하다. 하긴, 이런 기름덩어리를 주식으로 먹으니 저렇게 안찌는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겠지.
지금시간 1시, 4시에 허비베이행 버스를 타야하니 이제쯤 출발을 하는게 나을 듯 해 길을 나선다. 건널목을 향해 가던 중 실크블라우스에 초미니 스커트, 하이힐을 신고 걸어가는 금발의 여성이 보인다. 아하. 이곳도 이렇게 이쁜 사람들이 있긴 하구나 바라보던 중, 들려오는 한국어. 그렇다. 그녀는 한국인이었다. 옆에 어머니로 보이는 듯한 여자분과 함께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는데, 그래도 처음 외지에서 보는 한국인이어서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다가 포기했다. 무언가를 찾아가는 듯 했고, 괜한 오해를 살듯 싶은데다 내 차림이 무척이나 배낭여행자스러워서, 차림새가 너무도 고급스러운 저사람들과는 잘 안맞을 듯해서 였을까.
"방을 하나 예약하려고 합니다."
"When you ................?"
"네? 저 영어 잘 못하니까 쉬운말로 해주세요."
"Do you ............................"
"음. 뭐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오늘밤 9시반에 허비베이 터미널에 도착합니다."
"Okay~ ..........."
브리즈번 트랜짓센터에 도착하자마자 오늘 묵을 숙소에 전화를 걸어 예약을 했었다. 와, 도무지 전화로 이사람들 말하는것을 알아듣지를 못하겠다. 허비베이는 브리즈번에서 300킬로정도 북쪽에 있는 작은 도시인데, 그렇다보니 억양이나 발음이 완전 딴나라 언어같았다. 더군다가 전화로 이야기 해야 하는 상황이니 눈치를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 난감하기만 하다. 우여곡절 끝에 대충 몇단어 알아듣고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혹시나 도착해서 픽업을 안오면 어떡하나, 혹시 내가 예약을 잘못한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선 느긋이 버스시간을 기다린다.
브리즈번 버스터미널 대합실
허비베이까지의 버스시간은 5시간 40분 정도. 서울-부산정도를 오가는 시간이지만 이사람들에게는 동네 나들이 정도의 수준이다. 버스로 북쪽 케언즈에서 남쪽 멜번까지 다니는 노선이 있는데, 그 시간이 무려 60시간이라고 한다. 말이 60시간이지 꼬박 이틀 반을 안쉬고 내리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그 거리를 용캐도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단다. 진정 그들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맥커퍼티 버스. 허비베이로 가는 도중 휴게소에서 찰칵.
남반구이다 보니 내가 탄 버스가 브리즈번을 벗어나자마자 이내 해가 저문다. 긴 여행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잠이라도 좀 청해볼까 하고 누웠는데, 생각보다 좌석이 불편하다. 푹신한 느낌은 우리나라 버스보다 훨씬 좋았지만, 웬지 좌석의 기울기나 크기가 한국인의 체형과는 맞지 않는 듯 하다. 옆자리가 비어있어서 결국 모로 비스듬히 누워서 겉옷을 베개삼아 누워서 눈을 감았다. 두시간쯤 지났을까. 버스가 휴게소로 보이는 곳으로 들어가고, 기사 아저씨가 뭐라고 이야기 한다. 역시 알아듣지는 못했고, 다른 사람들 눈치를 봐서 같이 따라 내린다. 저녁식사를 하고 오라는 것일까. 대충 닭튀김 몇개를 먹고서는 버스앞에서 담배를 한대 물고 기다린다.
휴게소 이름이 "마틸다의 트럭 & 여행자 휴게소" 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이 버스들은 보통 휴게소에서 최소 40분, 최대 1시간씩 머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처럼 15분 정차해서 간단히 화장실을 다녀오고선 출발하는 것에 익숙한 나로서는 참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식사시간이 겹쳐있는 버스를 탈 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밥을 먹는다던가 도착해서 먹을텐데, 얘네들은 그게 아니다. 무슨 일을 하던 식사시간이 되면 챙겨먹어야 하고, 그게 버스를 타고 여행하는 중에도 예외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이 이야기하길, 식사시간에 1시간을 주는것들도 이사람들에겐 넉넉하지 않다고 한다. 하긴, 이사람들의 식사습관은 우리나라처럼 게눈감추듯 먹고 일어나는 그런것과는 많이 다르니 이해가 될만도 하다.
"당신이 브리즈번에서 온 미스터 임이쇼?"
"네."
"여기 타쇼."
허비베이에 도착했을 때 날 데려갈 봉고차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터미널 바로 뒤 주차장에 자기네 백팩커 팻말을 걸어놓고 수많은 봉고차들이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예약했던 프레이저이스케입 백팩커의 봉고차도 한쪽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 역시나 이곳 사람들 말은 직접 들어도 도무지 한단어도 이해하기 힘들다. 발음이 구린건지, 아니면 내 귀가 먹통인건지..
프레이저이스케입 백팩커는 캐러반을 개조한 숙소로 유명하다. 게다가 가격도 1박에 11$정도로 무척 싸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꽤 찾는 곳이라고 한다. 내가 묵은 캐러밴은 6인실의 15호실이었는데, 거기엔 이미 5명의 사람들이 잘 준비를 마치는 중이었다. 하긴, 내가 백팩에 도착한 시간이 거의 10시였으니.. 아, 근데 내침대가 너무 형편없다. 2층 한자리가 남아있는데, 개조된 캐러반에 억지로 침대를 집어넣다보니 매트리스 바로 1미터 위에 천장이다. 이미 방 식구들과 인사를 다 끝낸 상황에서 또 가방을 들고 방을 옮겨달라고 말하기도 그래서 그냥 포기하고 쓰기로 하고선 가방을 풀었다.
내방에는 스위스에서 영어공부를 하러 왔다가 돌아가기전 여행다닌다고 하는 한 남자와, 영국에서 온 여자 둘 등이 사용중이었다. 대부분의 백팩은 남녀가 방을 같이 쓰는 것이라고 익히 들어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부담스럽기는 피차 일반일텐데, 이 녀석들은 제 방 쓰듯 옷을 훌렁훌렁 갈아입는다. 난 일부러 괜히 딴청 피우는 듯 내 가방 풀기에 여념없었는데 한 여자애가 옷을 갈아입으면서 나에게 질문공세를 던진다. 다행히 영국아이다. 들린다.
"왜이렇게 늦었어요?"
"오늘이 제가 호주에 온 첫날이에요. 브리즈번에서 골드코스트 다녀오느라고 좀 늦었어요."
"오. 정말 엄청난 날이었군요."
Big Day.
그랬다. 오늘은 나에겐 정말 빅데이였을 것이다. 이곳에서의 모든 경험들이 낯설었고 새로웠기에 그만큼 대단한 날이었을 것이다. 이제 이렇게 열흘을 더 보내어야 하지만 점차 적응이 되어가겠지. 그리고 떠날 때쯤엔 이곳이 무척이나 그립겠지. 내 인생에서 첫번째로 가져보는, 아무도 날 알지 못하고, 나역시도 아무것도 모르는 이 낯선 곳에서의 첫날. 내 인생에선 정말 대단했을지도 모를 오늘, 이렇게 호주에서의 나의 첫날밤은 흘러가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