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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레이저섬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모래섬 답게 해변에서부터 보이는게 다르다.
프레이저섬에서 첫번째 프로그램은 부시워킹이라고 이름 붙인 원시림 관람이었다. 독자적으로 진화한 각종 온열대 우림들과 수만년동안 오염되지 않고 흘러간 계곡물등이 눈에 참 낯설다. 중간중간 보이는 열대 거목들의 덩치는 웬만큼 고개를 올려다 보지 않으면 끝을 알 수 없을 정도였고, 온갖 나무 덩쿨들이 치렁치렁 주변을 감싸고 있다. 우리 일행들은 그 사이로 자그맣게 난 길을 따라 삼림욕을 즐기며 줄줄이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에 바빠 앞뒤로 조금씩 무리가 나뉘어 졌다.
 가이드투어용 버스. 내가탄 버스는 이거보다 좀 더 큰 녀석이었다.
 운좋게 버스 맨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ㅋㅋ.. 도로가 모두 모래밭이라 심하게 흔들린다.
 프레이저섬의 원시림과 계곡. 가이드에 의하면 저 물이 100% pure water랜다.
"혼자 오셨어요?" "네." "일본?" "아뇨, 한국인입니다." "아하,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후후 글쎄요. 한번 알아맞춰 보세요." "음.. 30?"
서양인들이 동양인의 나이를 알아 맞추기란 쉽지 않다. 나 역시도 여기서 버스요금을 지불할 때쯤 항상 듣던 말이 혹시 학생이냐는 질문이었으니 말이다. 아마 적어도 대여섯 살 어리게 보지 않고서는 이런 말은 좀처럼 나오기 힘들 듯 하다. 우리 역시 서양인들의 얼굴만 보고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대부분의 동양인들은 서너살 위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서양인들은 내 나이를 대충 알아맞춘다. 녀석들, 눈썰미가 있는건지 아니면 일부러 많이 부른건지는 잘 모르겠다.
 왼쪽부터 파스칼, 노니, 그리고 패트릭
"그 쪽 분들은 어떻게 되세요?" "하하, 역시 알아 맞춰 보세요." "흠, 스위스?"
약간은 반색하는 분위기다. 영어 액센트가 독일어와 가까운 듯해서 독일인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스위스라고 얼결에 말했는데, 그게 적중해버렸다. 하지만 역시, 나이를 알아차리는 것이 제일 힘들다.
"나이는 24정도인가요?" "헉, 틀렸어요. 전 21이고 저 친구는 20이랍니다."
잠시 좌절하는 표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어느 나라 사람이던 나이 많아 보이는 건 좋은 느낌이 아닌듯 할텐데 은근히 미안하다. 생각보다는 젊다. 하지만 내 눈에는 이 녀석들이 한국에서 보아오던 20대 초반의 젊은 친구들보다는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이 친구들은 스위스에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시드니에 왔다가 귀국 전에 북쪽 케언즈까지 올라가며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21살의 패트릭과 20살의 파스칼, 그리고 그 무리에 같이 있던 타이에서 온 노니. 이들과의 즐거운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혹시 이들 무리에 내가 끼어드는 것이 실례가 되진 않을까 하고 살짝 조심스럽긴 했지만, 호의적으로 말을 건네주는 모습에 그런 걱정은 접어두기로 했다. 어차피 같이 투어에 참가한 일행이었기 때문에 좋든 싫든 계속 얼굴을 봐야 할테니 말이다.
 유롱비치 리조트 - 나름대로 깨끗하고 크다.
오전에 부시워킹을 끝내고 도착한 유롱비치 리조트, 역시 비수기라 그런지 4인실 숙소를 쓰는 사람이 나 혼자다. 내심 개인적인 시간도 즐길 수 있어 나쁘진 않았지만 조금은 심심할 듯 하다. 프레이저섬에는 두 군데의 리조트가 있는데 하나는 내가 묵었던 여기 유롱비치 리조트이고, 다른 하나가 섬 반대편에 있는 킹피셔 리조트라고 한다. 킹피셔 리조트의 투어 가격이 조금 더 비싼고 리조트의 규모가 더 크긴 하지만 프로그램 내용은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먹는게 맞는건지... -_-
유롱비치 리조트에서의 점심 식사는 뷔페식이었다. 햄, 파스타, 채소, 생선튀김 등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서양 음식들이었는데 역시 고단백 고지방 음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것 저것 맛있어 보이는 것들만 집기보단 골고루 접시에 담고서는 이 사람들의 식습관을 한번 느껴보기로 한다. 그럭저럭 한국인 입맛에도 맞는 듯 한것이 먹는 걱정은 크게 없을 듯 하다.
패트릭은 그의 입맛에 다른 것들은 맞지 않는지, 수북히 파스타만 접시에 담아서 먹고 만다. 생선 튀김은 치즈스틱마냥 길다란, 흰살 생선에 튀김옷을 입혀 만든 음식인데, 우리나라의 생선까스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맛이다. 무슨 생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타 메뉴들 중에서 사람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것 중 하나인데, 이것이 바로 호주인들이 즐겨먹는 Fish & Chips의 주재료라고 한다. 타이에서 온 노니는 자기네 입맛과 무척 맞는지 수북히 생선튀김을 쌓아놓고 레몬즙과 후추를 뿌려 먹는다. 외모도 그렇거니와 말투나 행동이 참으로 순박한 친구이다. 주로 패트릭과 파스칼이 'Nonny~~~~!' 하고 약올리면 그제서야 씨익 웃으면서 한마디씩 반격하는 모습이 셋이 참 친한듯 보인다. 이들 무리에서 난 단지 이방인일텐데 그다지 경계심을 보여주지는 않는 듯 한 자세가 고맙다. 다들 호의적이고 착한 사람들이다.
 나무타는 노니 - 노니네 나라(타이)에서는 어릴때부터 이러고 논댄다.
호주에 와서 가장 익숙하지 못했던 것이 인사였다. 'thanks' 나 'hi, man' 등의 인사는 너무나 당연하고, 'sorry'에는 늘 'welcome'이나 'doesn't matter'가 따라온다. 오직 한국인이나 일본인들만이 이런 인사 습관에 어색하다. 특히나 일본인의 경우에는 웬만해서는 눈도 마주치려 하지 않을 뿐더러,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절대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지도 않는다. 주로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살아가는 성향이 미덕인 동양인들에겐, 이런 서양 사람들의 행동 양식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땅해 보인다. 우리 나라만 하더라도 명동이나 강남역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눈이라도 마주치면,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금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혹은 시비가 붙어 험한 말이 오가지 않는가. 굳은 얼굴에 굳은 시선으로 다니는 것이 정말로 정신 건강에 좋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는 않으리라 본다.

"군대에서 행군했던 생각이 나요." "한국의 군대는 모병제에요?"
오후의 땡볕 아래에서 웨비 호수를 향해 가는 길은 험난했다. 주변의 풀숲과 모래 바닥, 그리고 이어지는 사막들, 어깨에 맨 배낭들로 이내 등은 땀으로 흥건히 젖어가고 있었을 때, 문득 떠올랐던 것이 내 지금 이 모습이 마치 군생활 때 행군하던 모습과 별 다를바 없어 보인다. 마침 신발도 군화스러운 마틴화를 신었으니 땅바닥을 보며 힘겹게 올라가는 내모습이 딱이다. 내 혼잣말에 관심을 가진 페트릭이 내게 묻는다. 스위스 군대는 우리 나라와 달리 모병제이다보니 주말에 외박을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군대는 2년 동안 징병으로 가서 휴가가 채 한달도 되지 않는다고 말했더니 페트릭은 놀라는 눈치다. 힘들어서 어떻게 군생활 하느냐고.. 염려마라 이녀석아. 그래도 다 간다. 그래서 한국 남자들이 어디 내놔도 잘 살아가는 것 아니겠는가.
한시간여의 행군 끝에 도착한 웨비 호수는 반달 모양으로 생긴 조용한 한국 저수지 같았다. 다만 물이 훨씬 맑고, 호수가의 모래들이 사막마냥 넓게 퍼져 있는 모습이 조금 다르다. 내심 도착하자마자 멋지게 뛰어서 호수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었으나, 푹푹하니 모래속으로 빠지는 발이 나의 의지를 가로막는다. 그리고, 난 사실 수영을 못한다.

"앗, 차거." "노니~ 한번 놀아볼까?"
녀석들 신났다. 훌러덩 옷을 벗어던지고 제일 처음 노니부터 물속으로 뛰어든다. 어느정도 따가운 햇살이었지만 그래도 물은 상당히 차가웠다. 슬그머니 발부터 담그고서는 이리 저리 사람들 수영하는 것을 구경한다. 노니는 벌써 온몸을 호수 속으로 담근 채, 이리저리 헤엄치기 바쁘고, 그런 노니를 쫓아 물장난을 치는 패트릭을 보며 역시 똑같구나 하고 한번 웃음을 지어준다.

물놀이 중인 노니와 패트릭
 웨비호수 백사장(?)에서 한장. 나, 패트릭, 노니
한국에서는 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하루종일 물 속에서만 논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대부분 물보다는 햇살 내리쬐는 물언저리에서 비치타월을 깔고 누워서 책을 읽거나 잠을 청하는 것을 더 즐긴다. 시간의 여유로움을 만끽한다는 것일까. 나에게 익숙하지 못한 이런 행동들이 신선하다. 푸른 하늘과 초록빛 호수, 노랗다 못해 하얀 모래알들. 신선한 바람이 코끝을 진동시키는 이런 곳에서 읽는 독서의 맛이란, 진정 이들이 즐기고자 하는 재미는 '자연과의 동화'가 아닐까 싶다.
 수영중인 사람은 열명 내외, 나머지들은 왼쪽 백사장에서 죄다 드러누워있다.
한국인들은 참으로 자연과 동화되려하지 않는 듯 하다. 언제나 우리는 자연을 이용하여 우리의 생활을 인위적으로 편리하게 바꾸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대부분이다. 허나 이곳 사람들 - 물론 이들 전부가 호주인은 아니겠지만 - 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즐기는 것에 더욱 익숙해 보인다. 국민성의 차이라고나 할까. 무언가 공통으로 통할 수 있는 감성의 코드는 한국과는 많이 달라보인다. 아직은 나역시 내 의식이 이들과 동화되지 않았음에 미안함과 어색함을 느끼고선 발걸음을 돌린다.
"저녁 먹고 펍에 가서 놀지 않을래요?" "그러죠~" "굿 초이스!"
고작 한시간여 뛰어다닌 그것도 운동이라고 몸이 상당히 천근만근이다. 저녁 식사때에 별 말없이 음식만 야금야금 먹을 뿐 다들 눈에 총명함은 사라진 듯 하다. 남반구인지라 이제 겨우 6시가 지났을 뿐인데도 바깥은 깜깜하다. 저녁먹고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하던 중 건넨 솔깃한 페트릭의 제안. 피곤했지만 이정도는 참을 수 있겠거니 하고 그들을 따라 나선다.
 유롱비치 내부의 펍. 왼쪽에 한팀만 달랑 있드라..
이곳의 펍은 일단 리조트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시내의 그것들에 비해서는 무척 한가롭다. 두세명이 이미 자리를 잡고 한껏 즐겁게 대화를 하고 있었고, 난 호주 맥주인 포엑스(XXXX) 한병을 사들고는 여기저기 구경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펍에 사람들이 바글거리기엔 시간이 너무 이르다. 호주의 펍 문화는 한국의 홍대 클럽 문화와 상당히 비슷하다. 중앙에 넓게 공간이 있고 사람들이 맥주 한두병 마시면서 가운데서 흥겹게 춤을 춘다. 그러나 이제 겨우 7시반. 그러기엔 아직 두세시간은 족히 걸릴 듯 하다.
"미안, 너무 피곤해서 들어가야겠어요. 지금 너무 졸리네요." "아, 그래요? 그럼 들어가서 쉬고 내일 다시 봐요." "즐겁게 놀고요.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네, 굿나잇~"
말을 꺼낼까 말까, 괜히 내가 분위기 깨트리는건 아닐까 조심스럽게 참다가 그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숙소로 들어온다. 막판에 마셨던 맥주가 결정타인듯 싶다. 덕분에 숙면을 취하는 건 쉬울 듯 해보인다. 어차피 방엔 나 혼자 뿐이니 편한 마음으로 짐을 푼다.
 숙소. 혼자쓰는 관계로 짐과 옷가지를 널어놓고 지냈다 ㅎㅎ 심심할땐 옆방의 패트릭네에 가서 놀고..
가지고 온 디지탈 카메라의 배터리가 바닥나기 시작한 모양이다. 벌써 3일째 충전을 하지 못하고 계속 사용하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호주의 전기는 우리나라와 비슷한 240볼트를 사용하고 있는데 플러그의 모양이 독특하다. 3구 플러그를 쓰는데 그 모양이 110볼트 플러그를 45도씩 비틀어 놓은 모양새다. 한국의 220볼트용 플러그에 어댑터만 연결해서 사용하면 된다고는 하는데, 인천공항에서 그런 플러그를 판매하긴 하는데 가격이 무척이나 비싸고, 현지에 오면 싸게 구할 수 있다는 말만 믿은 것이 실수다. 도대체 이 야밤에 어디를 가서 그 어댑터를 사온단 말인가. 그것도 여긴 시내도 아닌 프레이저 섬 리조트에서 말이다. 혹시나 해서 대충 배선 뚜껑을 열어서 사용할 수는 없을까 싶어 둘러보았지만 허사이다. 내일부터는 카메라를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과, 다시 뭍으로 돌아가면 바로 어댑터를 사러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내 깊은 잠에 떨어진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파도 소리가 자장가마냥 들려온다. 호주에서의 이틀째 밤이 은하수 따라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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