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Austrailia2007/01/02 17:59
프레이저섬 투어를 다녀온 사람이라면 동부 해안에서 가장 인상깊은 장면 하나를 꼽으라면 열이면 열 마헤노 난파선을 고를 것이다.


마헤노 난파선


1935년에 좌초된 마헤노 난파선(Maheno Shipwreck)은 당시 좌초된 상태 그대로 방치해 놓아 지금은 흉물스러운 뼈대만 남은 고철덩어리가 되었지만, 호주정부는 이 난파선을 옮기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어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버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책인데,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정서로 무장된 호주인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라는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곳에서 난파선의 사진을 보았었지만 막상 내눈앞에 보이는 녹슨 선체를 보고 있자니 그 세월을 피부로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맥켄지 호수로 떠나기전 유롱비치에서 . 페트릭, 눈감았군.


이 마헤노 난파선과 더불어 프레이저섬의 백미인 장소가 바로 맥켄지 호수이다. 투어의 마지막 코스였던 이 맥켄지 호수는 해발 100미터정도되는 모래 언덕에서 수천년동안 내린 빗물로 형성된 150헥타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프레이저섬에서 유일하게 이 맥켄지 호수의 물과 모래가 상처와 질병의 치유능력이 있다고 한다.


맥켄지 호수.


패트릭과 파스칼은 호수로 내려오자마자 비치타월을 꺼내든다. 녀석들은 오늘도 여전히 광합성이고, 의외로 노니가 버스에서 나오지를 않는다. 어제 너무 무리를 한 모양인지 아까부터 안색이 별로 좋지 못한 듯 보인다. 난 바지를 걷어올리고, 카메라를 목에 두른 채 첨벙 호숫가로 발을 담그고서는 왼쪽 끝에서 오른쪽 끝까지 퐁당퐁당 물을 튀겨가며 셔터질을 한다. 몇몇의 여행자들은 물속에서 자맥질을 하느라 바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광합성에 열중이다.



이것이 바로 평화. - 맥켄지 호수



구름이 머리 뒤로 남실남실 흘러간다. 어디선가 바람이 나의 뺨을 훑고 지나간다. 이내 너울너울 바람에 수면의 반짝이기 시작하고 아름답게 투영된 호주의 하늘 모습이 따사로운 햇빛에 반사되어 나의 눈을 간질거린다. 이런 모습을 두고, 아마 사람들은 평화롭다는 말을 할 것 같다.


여행의 종류는 무척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새로운 문화와 풍경을 보면서 지식을 넓히는 목적도 있을테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며 혀를 즐겁게 하는 식도락 여행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찌든 도시생활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자 무작정 배낭을 둘러매고 오직 자유와 평화를 느끼기 위해 떠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곳 맥켄지 호수는 나에게 이번 여행의 진정한 참맛을 느끼게 해주기에 너무나 안성마춤인 곳이었다.


프레이저섬에서의 모든 투어일정을 마친 우리는, 이제 섬을 떠나기 위해 선착장으로 향한다. 서쪽 끝에 있는 프레이저섬 선착장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바지선을 기다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의 여행을 끝마치게 되면 정신적인 만족을 느끼는 반면 육체적인 피로를 느끼게 마련인데, 뉘엿뉘엿 지는 호주의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면서 앉아있는 우리의 모습은 무언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크나큰 것을 하나씩 다들 얻은 마냥, 흐뭇한 미소를 하나 가득 머금은 채 느긋하게 배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의 안식에 답레라도 하는 것 마냥, 프레이저섬의 석양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프레이저섬 선착장에서 바라본 석양.



이제 이 배를 타고 나면, 모두들 각자의 길로 다시 힘찬 발걸음을 내딛을 것이다. 패트릭 녀석들은 북쪽 에얼리비치로, 그리고 나는 그토록 기대하고 있는 꿈의 도시 시드니로.


소소하고 작은 이별이겠지만, 나름대로 함께 어울리며 쌓은 우정이 있었던지라, 그리 말을 하지 않더라도 아쉬운 표정은 얼굴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것은 이제까지 아무말 없이 우리 일행중의 누군가였던 사람들에게도 공통적인 것이었을테다. 갓 스무명이 넘지않았던 우리 일행들은 허비베이 선착장에 도착함과 동시에 제각기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를 타면서 가벼운 목례를, 힘찬 손짓을 서로서로 나누기에 바빴다. 페트릭 일행들과 작별인사를 하고선 허비베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 도중에 일행속에 조용히 묻혀있던 한 사람을 발견한다. 혼자 여행온 여자였던지라 쉽게 말을 건네지 못하였었는데, 목적지가 같았기에 자연스레 대화를 할 기회가 생겼다.




← 허비베이로 돌아오는 길, 배 위에서 찍은 보름달




"이름이 뭐에요?"
"제 이름은 '아카리'에요. 그쪽은요?"
"제 이름은 좀 어려워요. 부르기가.."
"이름이 '어려워'에요? 흣. 안녕, 미스터 어려워!"
"켁, 그게 아니고..."


이 친구, 말하는게 제법 귀엽다.
내가 만났던 대부분의 유럽 사람들이 그러했듯이, 그녀도 독일에서 어학연수를 위해 호주로 왔다가 돌아가기전 호주를 여행중이었다고 한다.


자기 몸집만큼 커다란 여행가방을 끌고 혼자서 돌아다니는 모습에 도와줄까 하고 가방을 들어주었더니 자연스럽게 내게 인사를 한다. 이미 투어 중에 안면은 있어 그다지 어색하진 않았기에 버스 출발 시간까지 같이 움직이면서 이야기를 주고받기로 했다.



"그런데 이름이 일본어같은 느낌이 좀 드는데, 혹시 일본어 아세요?"
"당연하죠. 엄마가 일본인이거든요."
"아, 소오데스까?"
"오, 일본어 할 줄 아세요?"
"아뇨. 이 정도밖에 못해요. 아리가또, 스고이, 가와이. 뭐 이런 정도..."



둘 다 저녁을 먹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주변에 식사를 할만한 곳이 있을까 하고 둘러보다가 대뜸 중국 음식점에서 밥을 먹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한다. 오, 호주에서 먹는 중국음식이라. 호기심이 생긴다.



"어머니가 일본인이면, 일본에 가본적은 있겠죠?"
"네, 일본, 타이, 홍콩을 다녀왔죠."
"한국은 올 생각 없어요?"
"내년에 아시아를 더 보고 싶어요. 한국이랑 중국."
"그렇군요. 제가 초대는 못하겠지만 혹시 한국 오게 되면 메일을 보내주세요. 볼만한데를 알려드릴께요. 아, 그리고 전 아마 내후년 쯤에 독일에 갈지도 몰라요. 월드컵 보러."
"아, 그래요? 어디서 하는지 아세요? 전 쾰른에 사는데."
"에... 그건 잘 모르겠어요."
"에이,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오려구 그래요. 독일 공부 좀 더하셔야겠네."



외모는 서양인인데, 먹는 음식이나 말투가 그다지 거부감이 느껴지진 않는다. 생각하는 것과 말투에서 꼼꼼함이 느껴지기도 하고, 상당히 스마트해 보이는 재치가 돋보이는 괜찮은 사람이다. 역시 동양인의 교감이 비슷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서 처음 독대하는 서양 아가씨인데도 별로 부담스럽지가 않다. 볶음밥과 탕수육, 라조기를 배불리 먹고 정류장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다 보니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다.



"이제 전 가야겠네요. 좀 더 일찍 인사했더라면 많은 이야기 나눌 수 있었을텐데, 조금 아쉬워요."
"케언즈까지 가려면 많이 힘들겠어요. 푹 자고 일어나면 도착할테니 버스타면 바로 주무세요. 저도 아쉽네요. 독일가면 꼭 연락할께요."
"그래요. 꼭 공부 더 하시고요! 한국 가면 메일 주세요."
"하하, 네. 짐은 제가 들어줄께요."
"고마우셔라."
"그럼 잘 가구요. 아우프 비더젠. 사요나라."
"크, 님도 좋은 여행하세요."


페트릭 일행도 이 버스를 타는가보다. 배낭을 하나씩 둘러메고 버스로 향하면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시드니 잘 가고, 꼭 메일 보내요!"
"그래요 페트릭, 에얼리비치까지 가느라 고생할텐데 푹 자요. 파스칼, 노니, 이런말 하긴 좀 징그럽지만 아마 그리울거에요. 정말 즐거웠어요."
"잘가요. 우리도 보고싶을 거에요. 사진 꼭 보내주세요."
"굿 바이~!"


버스에 타고 나서도 복도로 고개를 쭈욱 빼더니 의자에 앉아있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든다. 힘차게 그들에게 엄지를 펼쳐보이며 답례를 하니 헤벌죽 웃는 모습이 뚜렷이 보인다. 첫번째 여정에서 정말 좋은 녀석들을 만난 것 같다. 잘 지내길.


허비베이 버스터미널 옆 길거리.


한 무리의 사람들이 벌떼마냥 버스에 타고나니 이내 허비베이 정류장은 정적속에 차분해진다. 간혹 소음을 내면서 나타났다 사라져가는 꼬마녀석들의 스케이트보드 소리와 대뜸 내게 시간을 물어보곤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몇 외에는, 까만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별들만이 이젠 내 동반자이다.  만났던 사람들 하나하나 모두 친절했고, 다들 이 무궁무진한 호주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서 열심히 떠나가고 있다.


인생에서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 날이 언제 과연 있을까 생각하면서, 잠시 스쳐가야 하는 인연이었겠지만 그만큼 친해져 버렸기에 기억에 오래 남을, 이 소중한 사람들이 이제 하나 둘 제각기 꿈과 미래를 찾아 떠나들 간다. 나를 알게된 사람들 모두에게 행운과 축복 있기를. 나 역시 그대들을 이 소중한 기억 속에 고이 간직하리오.


30여 분쯤 기다렸을까, 이미 내가 탈 차는 벌써부터 정류장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나보다. 꽤 허름해 보이는 이 맥커피 고속버스를 타고 브리즈번으로 가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듯 하다. 차 문이 열리고 좌석을 배정받아 자리를 잡은 난 이내 잠을 청해야만 했다. 브리즈번까지 7시간. 최대한 빨리 자는게 속이 편하지 않겠는가.




Posted by 달려라 Agent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