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5일째 새벽 4시. 어느 정도 몸이 지쳐가는지 조금씩 게으른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브리즈번 공항까지 택시를 타면 얼마정도 드나요?"
"아마 한 30달러 정도 들 겁니다."
트랜짓 센터의 보안요원에게 택시요금을 물어보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내가 택시를 타기로 내심 결정한 모양이다. 예정보다 30분 일찍 터미널에 도착한 탓도 있었겠고, 5시에 출발하는 에어 트레인을 타고서는 6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여유롭게 타기엔 좀 위험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때문이기도 했을 것이지만, 제일 큰 이유는 조금씩 체력이 달리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괜히 마음 졸이는 것 보다 호주택시도 한번 경험삼아 타보자 결심하고선 도로로 내려갔다.

브리즈번 국내선 공항 버진블루 창구 - 새벽이라 역시 사람들은 별로 없다.

게이트에서 탑승대기중인 버진블루 항공기 - 빨간 동체가 무척 예쁘다.
오전 4시 40분에 도착한 브리즈번 국내선 공항. 역시나 새벽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많지 않다. 시드니로 가는 항공편은 한국에서 미리 예약을 했었던 버진블루 항공인데 초저가 항공사로 유명하다. 일단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마그네틱라인이 있는 항공권을 주지 않고 달랑 영수증 하나만 끊어주고선 그것을 이용해 탑승한다. 재미있는 것은 모든 기내 서비스는 유료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헤드폰에서부터 식사, 음료서비스까지 스튜어디스가 일일히 요금을 받는다. 내가 탔던 6시발 시드니행 항공기에는 대학생인듯 보이는 사람들이 꽤 탔었는데, 스튜어디스와 농담까지 주고받으면서 커피와 아침식사를 주문하면서 지갑을 꺼내고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모습이 무척 재미난다.

멀리 해안을 따라 골드코스트-서퍼스파라다이스가 보인다.

비행기에서 바라본 호주 동부해안.
창밖으로 골드코스트가 보인다. 창가로 스며드는 아침햇살에 눈꺼풀이 꽤 무겁다. 눈을 떳다 감았다고 생각한 것 뿐인데, 어느새 시드니가 눈앞에 보인다. 두리번 두리번, 오손도손 모여있는 시드니 외곽의 빌라 지붕들이, 여유롭게 시드니 항만 주변을 배회하는 요트들이 예쁘다.
여기가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도시, 시드니구나. 드디어 내가 왔다, 시드니여.
늘 영화에서만, 사진에서만 보던 그렇게 아름다운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이제 내 눈앞에서 바라보고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 발걸음은 '얼른 공항을 빠져나와서 시내로 들어가야 해, 1분 1초라도 지체할 시간은 없어.' 라고 내 이성을 자꾸만 각성시킨다.
그래 알았다. 내 최대한 힘을 내서 시드니의 모든 것을 보고 느끼도록 하지.

시드니 국내선 지하철역 - 저기 광고판에 보이는 자동차가 현대 투스카니이다.
그린패스와 에어패스를 끊고서는 종종걸음으로 시드니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캐비넷을 끌고, 지도를 들고 두리번 두리번 고개를 기웃거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과 미소가 지어진다. 브리즈번과 허비베이에서는 익숙하지 못했던, 한가롭고 조용한 사람들 모습에 때때로 외로움도 느꼈고, 역시 여행자는 이방인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이제 그런 느낌을 가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며칠 다닌 여행이 벌써 익숙해졌는지, 이젠 낯설지도 불안하지도 않다. 더군다나 시내로 향하는 전철을 타자마자 귀에 들어오는 한국말이 나를 더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방금 도착한 유학생인 듯 보이는 여자분과 마중나온 현지 유학생인 듯한 남자분이 힐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서로 그동안의 안부를 물어보느라 정신이 없다.
호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시드니에는 여러나라 사람들이 이민을 와서 정착하고 있다. 한국인과 중국인은 물론이고, 일본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등 호주의 다국적 문화를 하나도 빠짐없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이민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특히나 시드니는 워킹홀리데이나 어학연수, 유학, 취업 등의 목적으로 방문한 한국인이 무척이나 많다. 주위 사람들이 하는 말로는 시드니에서 걸어다니는 동양인 세명중 하나는 한국인이라는데 이미 공항을 빠져나오면서 경험했으니 정말 틀린 말은 아닌가보다.

시드니 센트럴역 전경 - 저 열차가 시드니 전철인데 2층 전철이다.
도심과 무척이나 가깝게 붙어있는 공항 덕분에 그 한국인들과 이야기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전철이 센트럴 역에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영차 메고서는 지하도를 걸어나왔다. 다소 쌀쌀한 바람 끝에 짭잘한 바다내음이 뭍어나는 듯하다. 이제 겨우 오전 8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너무 조급해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고선 벤치에 앉아 지도를 펼쳐 본다.
왼쪽부터 센트럴스테이션역, 센트럴에서 바라본 죠지스트리트, 시드니 전철의 내부모습
오늘부터는 세부 일정을 짜놓지 않았다. 도시에 머무를 동안 마음가는대로, 발 가는대로 돌아다녀보리라 생각하고 텅텅 비워놓았었기에 막상 시드니에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 일단 걷기로 하자. 걷다 보면 무언가 목표가 생기지 않겠는가 하며 죠지스트리트를 따라 성큼성큼 한발자욱씩 내딛는다.

시드니 마켓시티 입구
제일 처음 들른 곳은 센트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마켓시티였다.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과 같은 역할을 하는 시드니에서 가장 큰 재래시장인데 물건을 진열하고 매대를 정리하는 모습, 그 사이를 열심히 돌아다니는 상인들과 여행객들의 모습이 정말 남대문 시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군데군데 한국인으로 보이는 상인들이 있고, 대부분 중국인인듯 하다. 상가를 두어 바퀴 둘러본 후 몇가지 선물들을 구입한 후 다시 죠지 스트리트로 나왔다. 카메라의 배터리가 바닥을 향하고 있었기에 얼른 플러그를 구입해서 숙소로 향해야 할 듯하다.

마켓시티 내부 모습 - 대부분의 매장이 이런 형태의 좌판이다.

역시 호주답다. 캥거루와 코알라 인형들. 하나 가격이 대충 5달러정도.
근처에 바로 전자제품 가게가 보인다. 혹시나 해서 들어갔더니 마침 내가 찾는 그 플러그가 있다. 무려 7달러라는 가격에 상당히 망설였지만, 더이상의 시간을 지체하느니 이정도 금액이야 감수한다 생각하고 지갑을 꺼냈다. 자, 이제 플러그도 해결되었으니 숙소를 구해보자 하고 고개를 돌려보니 바로 그렇게 유명하다던 Wake Up!이 내 눈앞에 보인다. 이거참, 느낌이 좋다. 하나하나 원하던 것들이 별 고생하지도 않고 순식간에 다 풀려버린다.
Wake Up!은 시드니 센트럴과 죠지스트리트 교차로에 위치한 백패커인데 그 시설이 다른 여느 숙소보다 월등하여 10인용 도미토리가 25달러라는 다소 비싼 숙박비에도 불구하고 여행자들에게 무척이나 인기가 높다. 체크인하기엔 다소 이른시각이 아닐까 하고 리셉션에 줄을 서본다.
"어서오세요."
"하룻밤 묵어가려 합니다. 10인용 도미토리에서요."
"아, 10인용은 지금 꽉 찼습니다. 대신 8인용이 비어있는데 26달러에요."
까짓꺼 1달러 정도야 하면서 카드키를 받아들고서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깔끔하고 아늑한 인테리어가 마음에든다. 그리고 무엇보다 즐거운게 수많은 이름모를 여기 이 사람들도 나와 같은 배낭 여행객들이라는 점이다. 다들 활기차 보이는 그 모습들로 인해 나의 에너지가 점점 더 차오름을 느낀다.

Wake Up! - 704호의 모습이다. 이정도만 되어도 정리상태가 양호한 축에 속한다. 한 열배정도 지저분한 방들도 있을 정도.

내 침대 - 널부러진 자켓과 양말, 수건 - 저 가방이 호주여행용 가방의 모든 것이다. 물론 돌아올때는 선물때문에 짐싸는게 무지 힘들었다.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콘센트에 충전기를 끼워놓고서는, 여정을 확인해본다. 일단 서큘러키로 가서 페리를 타보자. 어디로 가든 제일 빠른 것을 골라서 시드니의 전경을 바다위에서 감상하자고 결정하고서는 다시 가방을 둘러매었다. 나, 단단히 흥분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