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Austrailia2007/01/02 18:04


◀ 노쓰헤드에서 내려오던 중-
  맨리 언덕의 고급빌라들.

 

노쓰 헤드에서 내려오는 길은 생각보다 평탄했다. 이것도 산행이라고, 우리 셋의 표정은 꽤 지쳐 보이는 듯 했고, 돌아오는 길은 말수가 부쩍 줄어들었다. 어느새 오후 3시, 점심 먹을 시간이 훌쩍 지났기에, 코르소 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여기 케밥집이 맛있대요. 저도 들은 거지만…”

그래요? 그럼 한번 먹어봐야지.

 

한국에서 찾아본 정보에 의하면, 맨리 코르소 거리에 케밥집이 두 군데 있는데, 둘 다 아주 맛이 일품이라고 한다. 단, 양고기의 특유의 향이 싫은 사람은 비프 케밥이나 치킨 케밥을 주문하라는 조언까지 있었으니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지나치기가 아깝지 않을까. 비프 케밥과 감자칩, 바닐라 콜라로 구성된 세트메뉴를 하나 사고서는 벤치에 앉았다.

 

사실 태어나서 케밥을 처음 먹어보는 거라 이게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양은 성인남자가 먹을 만큼 충분했고 나름대로 한끼 식사용으로는 괜찮은 듯 싶다.

 

, 잘 먹었다.

 

치킨 케밥 하나를 다 먹은 윤정이 내 제안에 보답한다. 다행이다. 추천해 준 메뉴가 맛이 별로이면 꽤 민망했을 테니

 

맨리에서 다시 서큘러키로 들어가는 페리는 30분 마다 하나씩 있다. 방금 배가 떠났는지, 사람들은 별로 없다. 담배 한대를 피워 물면서 시드니의 첫날밤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해 본다.

 

오늘 밤에 펍에 가서 한잔하지 않을래요? 맨날 혼자 가니까 심심하던데…”

 

윤정의 뜬금 없는 제안에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 춤 못추는데

 

, 우리 백패커스 지하에 있는 거기 말이에요??

, 어때요?

, 그래요. 한번 가보죠 뭐.

로버트, 같이 가. 내가 출입증을 빌려줄께. 난 이제 얼굴을 아니까 그냥 들어가도 괜찮아.

 

 


맨리 비치의 모습

 

대부분 나라가 그러하듯이, 음주 문화에 대해서는 우리 나라보다 상당히 엄격하다. 호주와 다른 많은 나라에서는 술도 허가 받은 가게(보틀샵)에서만 팔며, 길거리를 걸어 다니면서 술을 마신다던가, 만취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 벌금 내지는 바로 체포 당하기도 한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 수도 없거니와 미성년자가 펍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 따기보다 힘들다. 호주도 물론 예외가 아닌데, 만 20세 미만의 청소년은 절대 어떠한 경우에도 입장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어느 나라에서나 마찬가지로 여기에도 당연히 편법이 있다.

 

우리가 묵는 숙소인 Wake Up! 에서는 미성년자를 받지 않는다. 즉 Wake Up!의 출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정식으로 이곳에 숙박을 하는 투숙객이자 성인임을 간접적으로 인증받은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건물 지하인 이 펍에서는 Wake Up! 의 출입증 소지 여부 만으로 이 사람이 성인인지 아닌지 간편하게 구분을 해낸다. 생각보다 단순한 판단방법인데, 적어도 그 펍에서는 출입증만 있으면 일단 무조건 성인이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로버트는 이제 겨우 17세인 관계로 이런 편법을 쓰지 않으면 절대 펍에 입장할 수 없다. 혹시나 얼굴을 보고 들키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듣자 하니 같은 서양인들끼리도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얼굴이 있다고 하며, 로버트의 얼굴이 바로 그런 얼굴이라고 한다. 하긴, 저 얼굴만으로 어떻게 17세의 풋풋한 소년임을 떠올릴 수 있을까. ? 행여 로버트가 이 글을 읽으러 오지는 않겠기에 이런 말을 쓰긴 하지만, 사실 로버트의 얼굴 정도면 웬만한 모델 뺨치는 수준급이라는 걸 밝힌다. 샤프한 눈매에 오똑한 코가 남자가 보기에도 무척 잘 생겼다! 절대 로버트의 외모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니 읽으시는 분들께서는 오해 없길 바랄 뿐이다.

 

로버트, 혹시 한국말 할 줄 알아요?

윤정에게 배우긴 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안녕하세요는 굿 모닝 이라는 뜻이에요. 한번 해봐요.

, 그거 알아요. 안냐세효!’”

“’안냐세효!가 아니고 안녕하세요!’”

안뇨하세이요!

하핫.

 

역시 외국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건 힘든가 보다. 발음법이 무척이나 다르니

 

어려워요. 대신에 일본어는 알아요. 오하…’”

오하이오 고자이마스!

유 갓 잇! 맞아요.

곤니찌와, 곰방와.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에 또 뭐가 있을까.

 

신났다. 몇 개 알지도 못하는 일본어를 알려주느라 침이 튀긴다.

 

한국말은 정말 발음하기 힘들더라고요. 윤정에게 몇 개 배웠었는데 하나도 못 외우겠어요. 일본말은 조금 쉬운 거 같고…”

윤정씨는 일본어 할 줄 아세요?

, 일문과 나왔거든요. 흣.

!

 

 


페리에서 바라본 맨리항구의 전경

 


서큘러키로 돌아가는길 - 로버트와 윤정

 


갑판에서 구경중인 사람들 - 실제로는 이 두배정도 되는 사람들이 갑판에 빽빽하다.

 


석양에 노랗게 물든 오페라 하우스 - 맨리에서 돌아오던 중.

 

서큘러키로 돌아가는 페리가 관광객 만선이다. 출발할 때와 마찬가지로 갑판에 수많은 사람들은 지나가는 시드니의 아름다운 모습을 정성스럽게 담느라 정신 없다. 윤정과 로버트는 지쳤는지 의자에 앉아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어느새 내가 여행을 떠난 지 5일, 호주에 도착한지 4일이나 되었다. 이제 슬슬 내 여행의 중반기에 돌입한다. 길지 않은 이곳 시드니에서 머무는 시간 동안 욕심내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충분히 느끼고 가도록 하자. 모든 걸 다 보고 나면 다시 오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니

 

윤정과 로버트는 버스를 탈 생각이 없나보다. 난 맨리에서와 마찬가지로 그들 뒤에서 졸졸 따라다니며 연신 시드니 중심부의 고층빌딩들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한참 걷다가 뒤돌아서 나를 바라보는 그들은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나를 보며 웃는다. 괜히 멋적어 성큼성큼 그들에게 다가가도 그때 뿐이다. 어느새 난 한참 뒤에 쳐져서 사방 팔방의 빌딩들 모습을 찍느라 바쁘다.

 


시드니 도심의 고층건물들 - 이름은 모름 -

 


오스트렐리아 스퀘어 타워 - 1층 로비의 모습

 

로버트는 타운홀 부근의 백팩커스에 묵는 관계로 우리와 일찍 헤어졌다. 윤정도 PC방에 들르기 위해 잠시 후 나와 인사를 하고난 후 종종걸음을 치며 멀어져 간다.

 

이따 9시 반에 리셉션 앞에서 봐요~

그래요. 이따 봐요~

 

잠시 동안 다시 혼자이다. 허나 해가 점점 기울어가는 시드니의 도시 풍경은 이제 낯설지 않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어색하지 않고, 이방인이라는 두려움도 점점 희석되어 간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을 따라 걸으며 시드니의 도심 풍경을 담느라 정신이 없다.

 


 


시드니 도심 건물의 시계탑 - 오른쪽이 타운홀 시계탑

 

 

아직 약속시간이 되려면 꽤 많이 남았다. 원래 맨리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무르지는 않으려고 했는데 본의 아니게 시간이 많이 걸린 셈이다. 이 남은 자투리 시간 동안 무얼 할까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서큘러키의 밤 풍경을 보러 가보기로 한다. 숙소에서 배터리 충전을 다시 한 후, 겉옷을 걸치고 힘차게 걸어 나왔다.

 

"저기 혹시, 길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이럴수가! 웬 여행객이 나에게 길을 물어본다.

 

"아, 죄송해요. 저도 여행객이라서 잘 모르겠어요."

"오,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이거 참 별일이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닌데, 내 모습이 이제 여행자스럽지 않은걸까... 그래, 괜히 어리버리한 여행자 모습 보다는 이런 자신 있는 모습이 더 낫지 않을까?  제법 자신감이 붙는다. 걸음걸이도 무척 현지인스럽다. 처음으로 버스 번호를 물어보지도 않고 대뜸 탄다.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도 자연스럽다. 점점 시드니 시민이 되어가는 듯 한 착각이 든다.

 

.....나의 적응력이여.

 


시드니 버스 내부의 모습과 시드니의 밤거리 - YHA Central cross road.

 

Posted by 달려라 AgentW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