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Austrailia2007/01/02 18:05


서큘러키의 페리선착장 야경 - 대부분의 페리는 밤 8시 이후 운행이 종료된다.

 


서큘러키 옆에 위치한  Contemporary Art 박물관의 야경 - 이 박물관 뒤편이 록스구역이다.

 


박물관 맞은편에서 공연중인 모습 - 전자 드럼 세트로 하루종일 저기서 연주한다.

 


서큘러키에서 바라본 하버브릿지의 야경 - 저걸 보고 안올라갈 사람이 있을까!

 

 

실례합니다. 저기 길 좀 가르쳐주실 수 있으세요?

, 저기 저희도 여행 온 거라 근데 한번 보죠. 어디를 찾으시나요?

 

고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이들은 독일에서 여행을 왔다고 하는데, 갑자기 배낭에서 창문만한 지도를 꺼내어 들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가 원한 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꽤 미안하다.

 


록스 구역 입구의 고급 레스토랑들

 

서큘러키에 도착하고서 록스 지역으로 올라가다가 문득 하버브릿지를 한번 걸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선 지도를 들고 따라왔는데, 지도엔 하버브릿지로 향하는 진입로가 표기되어 있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열심히 록스의 밤길을 헤메다가 사람들에게 물어보려고 했는데, 길에 지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반가운 마음에 이들에게 달려왔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먼저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확인해봐.

, 아마도 여기쯤 있는 거 같아. 아까 우리가 이 호텔에서부터 걸어왔잖아.

 

둘은 엉뚱한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길을 찾고 있다. 이들을 말려줘야 할까, 아니면 계속 지켜봐야 할까 껌뻑껌뻑 난 옆에서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본다. 그러기를 몇 분, 길 건너편에서 누군가 우리에게 소리를 친다.

 

길 잃었어요?

, 네 조금요. 좀 가르쳐 주실 수 있으세요?

 

현지인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와 여자 둘이 웃으면서 우리 무리로 다가온다. 살짝 바람에 풍기는 향수냄새에 고개를 들어봤더니 꽤 미인이다. (^^)

 

하버브릿지 위를 걸어보려 하는데 진입로를 못찾겠어요.

, 하버브릿지~ 제가 잘 알아요. 자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부터 볼까요?

 

역시나, 전혀 엉뚱한 곳을 바라보며 탐독중인 그녀.

 

, 아마 우리가 여기쯤 있는 거 같아요. 지도상에는 하버브릿지로 올라가는 진입로가 표시가 안되어 있어서 조금 어렵네요.

우리가 여기 있는 게 맞다면 저기 아래쪽 길을 따라 내려가면 될꺼에요. 혹시 샹그릴 라 호텔이라고 아세요? 거기 옆에 진입로가 있을꺼에요.

아니야, 반대쪽으로 가야 해.  저쪽 길로 가면 바로 올라가는 길이 있어.

 

옆에서 다른 여자분이 거든다.

 

어머, 거짓말 하지마~. 얘는 여기 안 살아서 몰라요. 제 말만 믿으세요! 제가 제일 잘 알아요. 제 말이 법이에요~!

 

무척이나, 분위기가 시트콤스럽긴 한데, 나쁘진 않았다. 적어도 이들은 생전 처음 보는 여행객들을 위해서 본인들의 시간을 충분히 소비하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고마운걸.

 

오케이, 정말 고마워요.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

정말요? 다행이네요. 좋은 여행 되길 바랄께요.

그래요. 고마웠어요~. 저기 독일 친구들도 고마웠고요. 여행 잘하세요~

, 굿바이~ 좋은 하루.

 

꽤 즐거운 해프닝이었다. 원하는 답을 충분히 얻지는 못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도 대충 저기쯤 가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일단 아까 들은 샹그릴 라 호텔까지 내려오니 길이 두 갈래이다. 그녀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일러준 거 같은데, 내가 보기엔 전혀 반대쪽으로 가는 듯 하다. 다시 지도를 펼쳐 들고 열심히 탐독을 하고선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10여분 쯤 후에 진입로가 드디어 나타났다. 씨익~ 하고 입가에 웃음이 난다. 좋은 추억 하나가 추가된 느낌이다.

 


드디어 하버브릿지 위에 도착했다!

 

서큘러키나 시드니 중심가는 밤에도 사람들로 넘쳐나지만 이곳은 그나마 인적이 드물다. 록스에서 여기까지 올라오기까지 아까의 그 일행 외에는 그다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본 것 같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진입로 계단을 올라와보고 나니 역시 이곳도 관광지인지라 산책하는 사람이 꽤 많다. 안전봉을 들고 배회하는 경찰들과 운동화를 신고 열심히 뛰어가는 사람들, 손을 꼭 잡고 걸어 다니는 연인들까지

 

생각보다 하버브릿지의 진동은 상당했다. 자동차도로와 산책로와의 구분이 명확해서 위험한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이정도 진동이라면 삼각대로 멋진 사진을 찍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역시 심하게 흔들린 사진들.. 오른쪽 위 둥그런게 보름달이다.

 


이건 록스 쪽에서 찍은 오페라 하우스

 

다리 난간으로 고개를 돌리니 야경에 아름답게 반짝이는 오페라하우스가 보인다. 그 위로 하얀 보름달이 꼭 조명등 같다. 왜 시드니가 세계 3대 미항인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한밤의 하버브릿지 위헤서 꼭 오페라하우스를 감상해 보길 바란다. 반짝거리는 가로등과 자동차들, 항만을 가로지르는 페리들의 불빛이 너무나 낭만적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그 모습에 연신 판타스틱을 외친다.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선 난간에 기대어 셔터를 계속 누르기 바쁘다. 아, 이 멋진 풍경을 꼭 예쁘게 담아봐야지 하는 욕심에 그 흔들리는 다리 난간에서 앵글을 잡느라 분주하다. 그런 내 모습이 신기한 듯, 연신 사람들이 지나가며 날 쳐다본다.

 


꽤 오랜 시간 동안 하버브릿지 위에 있었던 것 같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홉 시가 다 되어간다. 하버브릿지 끝까지 한번 걸어볼까 생각하고 올라온 것인데, 이제 겨우 반밖에 못지나온 것 같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다시 록스로 내려온다. 몇 장의 야경 사진을 더 찍고서는 숙소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버스 속에서 아까 찍은 사진을 리뷰하느라 바쁘다. 과연 얼마나 예쁘게 나왔을까, 은근히 기대가 된다.

 

숙소에 들어와서 짐 정리를 간단히 하고 리셉션으로 내려왔다. Wake Up! 의 리셉션은 가운데 티비가 있고, 티비를 중심으로 소파가 ㄷ 자로 위치하며, 티비 뒤로는 십여 대의 인터넷이 되는 PC들이 설치되어 있다. 꽤 늦은 시간임에도 몇몇 사람들은 인터넷을 하느라 정신 없고, 몇몇은 소파에 길게 뻗어 누워 테니스를 보고 있다. 벌써 아래층 펍에서 댄스곡들이 쿵쿵 울려댄다. 꽤 익숙한 멜로디인 듯해서 귀를 쫑긋 세워보니 Atomic Kitten의 Dont you know다.

 

일찍 오셨네요.

, 방금 내려왔어요. 하버브릿지에 갔다 왔거든요.

.

 

낮에 봤던 윤정이 까만 블라우스를 입고 내려왔다. 흠, 레이스가 여기저기 달린걸 보니 나름대로 무대 의상인 듯 하다. 잠시 후 로버트도 도착한다. 일단 소파에 앉아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로버트, 피곤하지 않아?

, 조금 피곤한 거 같긴 해.

 

뭔가 재밌는 대화가 필요해..

 

윤정씨, 그거 왜 피곤한지 내가 알려줄까요?

, 뭔데요?

낮에 바닷가 갔다 왔잖아요. 바닷바람에 소금기 때문에 바람이 피부에 닿을 때 삼투압 때문에 몸에 있는 수분이 빠져나가요. 그래서 피곤한 거에요.

, 정말이에요? 말은 되는 거 같은데…”

..글쎄요. 근거는 희박하죠. 뭐 제 나름대로 이론을 만들어 본거에요. ㅋㅋ

무슨 말을 하는지 나한테도 좀 가르쳐 줘요.

 

로버트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우리를 쳐다본다. 이걸 다 영어로 다시 설명해줘야 할텐데, 삼투압이 영어로 뭐였더라

 

꽤 썰렁한 대화를 몇 번 더 나눈 후에, 펍으로 내려갔다. 토요일 밤이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펍타임이 시작되지 않았는지, 실내에는 당구치는 사람들 몇과 얼마 안되는 테이블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 중인 사람들 정도이다. 호주 맥주인 빅토리안 비터 하나를 사 들고선 탁자에 앉아서 한 모금 넘겨본다. 쌉싸름한 느낌이 꽤 시원하다.

 

DJ의 손놀림이 빨라졌는지, 사람들이 하나 둘 스테이지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 손에 여전히 맥주병을 들고서는 흐느적 흐느적 흔들어대는 모습이다. 홍대 클럽에 가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이정도 수준에서 몸만 흔들거리는게 얘네들의 춤문화이다. 외국 애들이 춤을 못춘다는 건 익히 들어 알고 있지만,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보니 상상 이상이다. 80년대에 유행했을 법한 브레이크 댄스를 조금 구사한다면 아마 이 스테이지에서 최고의 인기를 얻을 수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덕분에 몸치였던 나도 그들과 어울려 흔들흔들 리듬에 몸을 맡기기 여념없다. 윤정은 그간 갈고 닦은 실력 때문인지, 탁월한 춤솜씨를 보여주면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고, 나 역시 필을 받았는지 평소에 안하던 동작까지 구사하면서 뻘뻘 땀을 흘리고 있다. DJ는 세시간을 넘게 강한 비트의 팝송을 흘려 보내주고 잇다. 슬슬 술에 취해, 춤에 취해 사람들이 하나 둘 광란의 터널 속으로 빠져든다.

 

아차 그런데, 내가 30대라는 걸 잊고 있었나보다. 슬슬 몸 여기저기에서 삐거덕 삐거덕 신호를 보내기 시작한다. 이봐, 몸주인. 넌 30대야, 무리하지마.

 

윤정씨, 헉헉. 아무래도 전 이제 올라가서 자야할 것 같아요. 허리가 아퍼요. 흑

에구, 그래요. 잘 들어가구요. 좋은 꿈 꾸세요.

, 로버트도 안녕~

 

땀에 흠뻑 절은 채, 조심스레 방으로 올라왔다. 아까 나오기 전에는 아무도 없었는데, 벌써 불은 꺼져 있고 다들 자기 침대로 들어가 자고 있다. 샤워를 할 기운도 없어, 그대로 몸울 매트리스에 눕혔다. 5일째 밤, 시드니의 첫날밤이 이렇게 땀 범벅 속에 흘러간다.

 

 

Posted by 달려라 AgentWing